총 13점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볼 수 있는 작품들과 유명인들을 담은 대표적인 초상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카르티에-브레송이 이전까지 찍어 온 사진들 중 일부를 추려내고, 앙리 마티스가 손수
장정을 제작하여 1952년 출간된 호화로운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희귀본을 비롯,
몇 권의 카르티에-브레송 관련 서적도 같이 전시된다.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은 이 용어가
생긴 이래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고 오늘날에 와서는 하나의 사진예술의 미학으로 자리잡았다.
‘결정적 순간’은 원래 그의 사진집 Images a la Sauvette의 영어판
제목이었다.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엄격한 구성 속에 배치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용과 구성이 가장 조화로운 순간, 절제된 구성과
기하학적 구도로 귀결되는 최상의 순간을 발견하여 타이밍에 맞추어 이것을 촬영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단순한 시각적 순간이 아니라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을
뜻한다. 그리고 피사체의 표정, 작가의 의도, 주변 상황 등이 사진 프레임 속에서
완벽하게 구성되는 아주 짧은, 찰라적인 순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명작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8)가 소개된다. 이 작품은 비온 뒤 고인
물 웅덩이를 막 뛰어넘으려는 한 남자를 보여준다. 카르티에-브레송은 공중에 있는 그
남자가 막 물 웅덩이에 빠지기 1000분의 1초쯤 직전의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그러나 이 남자가 보여주는 아주 분명한 ‘결정적 순간’은 뒤로 하고, 이 작품엔 더욱
결정적인 것이 있다. Y자 모양을 하고 있는 남자의 실루엣과 물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뒷 배경의 생 라자르 역 담벼락에 붙은 서커스단 포스터의 댄서들과 그 동작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단순히 이 남자의 절묘한 순간을 포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남자와 뒷 배경의 댄서들, 그리고 모든 주변 상황이 완벽하게
구성되는 아주 짧은 순간을 포착하는데 있다. 카르티에-브레송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인식하지 못하거나, 놓쳐버릴 수 있는 일상생활의 유머와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결정적인 순간은 물 웅덩이를 막 뛰어넘으려는 특별한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그 자체에 산재해 있다. 존경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파첼리 추기경(교황 비우 12세)을
둘러싼 관중들의 모습<몽마르트로 가는 파첼리 추기경, 파리, 프랑스>(1938)이나
포도주를 끼고 파리 무프타르 골목 모퉁이를 돌아오는 어린 아이의 익살스러운 표정<무프타르
거리, 파리>(1952)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초상사진들 중 몇 점도 소개된다. 초상분야는 사진이
회화로부터 끌어들여 구축한 하나의 영역이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부터,
초상을 기술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카메라의 능력을 인식했다. 예술가로서,
보도사진가로서 카르티에-브레송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 작가들 그리고 정치인들을
만났으며, 그들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그의 초상사진은 대상과 관찰자 사이에 어떠한
개입의 여지도 없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장면을 보여준다. 카르티에-브레송이 이들 인물들의
존재의 본질을 그대로 포착했기 때문에 관람자는 이들에 대해 친밀함을 느끼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사진을 비롯해서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화가였던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등
유명한 인물들의 사진과 카르티에-브레송이 여러 지역을 다니며 거리에서 만났던 익명의
얼굴들이 함께 전시된다. 그는 이 인물들을 모두 동일한 애정과 진지함으로 촬영했다.
이 중에서도 장-폴 사르트르의 사진<장-폴 사르트르, 작가>(1946)은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946년 제작된 이 사진은 사르트르의 성격보다는 그의 사상에
대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중요한 인물로서, 인간은 자유롭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며, 인간의 고통은 궁극적으로 이 책임감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역설했다.
대화 도중 생각에 잠긴 사르트르와 한 남자를 보여주는 이 사진은 이들 사상의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카르티에-브레송의 초상사진들은 우리 시대의 기록이자 우리가 보는
방식,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훌륭한 기록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세기의 명작사진들을 통해 20세기 사진을 다시 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던 개관전의 의미를 더욱 확장하는 것이다.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에-브레송의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번 20세기 사진이
가지는 의미를 재고해보며, 디지털 예술의 진행 속에서 정통적인 아날로그 예술 사진의
참 맛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사진의 소장가치가 날로 증가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서, 국내 컬렉터들에게 거장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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