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 당국에서는 지난 8월4일 문화부 장관이 직접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타계소식을 공식 발표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그 지역(Alpes-de-Hautes-Provence)의
몽쥐스탱(Montjustin) 묘지에서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고 조촐하게
진행되었고, 유가족으로 사진가인 아내 마르틴 프랭크과 한 명의 딸이 있다. 카르티에-브레송의
타계 소식에 프랑스 언론들은 일제히 그를 애도하고 그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하는 기사와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Le Monde 8월5일에 실린 애도 메시지
-쟉크 시라크 Jacque Chirac 대통령
르 몽드(Le Monde) 8월5일 자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이 세계적인 거장의
사라짐을 무척 고통스럽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천재적인 사진작가이며 진정한
매스터이고 그의 세대에 가장 재능 있고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는 아티스트 중의 한명을
잃었다. 나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게 경의와 우정 그리고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생애의 핵심적인 증거로써 그는 열정적으로 20세기를 사진으로 남겼다.”고
시라크 대통령은 말했다.
-쟝-피에르 라파렝 Jean-Pierre Raffarin 수상
문화부 장관이 공식 발표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사진가의 한 사람임을 상기시키는
동안 라파렝 수상은 “뛰어난 사진가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예외적인 재능”에
작별을 고하였다.
-리샤르 아브동 Richard Avedon (Photographer)
“그는 사진의 톨스토이였다. 깊은 인간애로 20세기를 증거하였다.”
거장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노년기의 삶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공식적으로 74년 그가 65세가 되던 해 은퇴를
한 후에는 사진보다 뎃생 작업에 몰두하였고, 결정적인 순간을 잡기보다 주변인물이나
가족, 풍경사진을 주로 찍으며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로 시간을 보내었다. 미셸 게렝
Michel Guerrin은 르 몽드에 쓴 카르티에-브레송에 대한 글에서 “카르티에-브레송은
사진을 찍지 않는 사진계의 스타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카르티에-브레송이 허락한 최초의 다큐영화, 갤러리 뤼미에르 야외 테라스에서 상영
1994년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화가 Sarah Moon과 Robert Delpire에
의해 제작되었다. 카르티에-브레송은 자신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을 극도로 피하여
자화상조차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question mark)”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카르티에-브레송을 찍은, 그리고 카르티에-브레송이 찍기를 허락한
첫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는 갤러리 뤼미에르에서 8월27일(금)부터 매주 금요일
추모의 밤 행사 시 야외 테라스에서 상영한다.
2004년 파리의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의 추모 전시
2003년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마지막 성대한 회고 전을 하였고, 석 달 동안 82,000
관람객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줄을 이었다. 같은 해 사진가로서는 처음으로 재단(foundation
d’Henri Cartier-Bresson)을 파리 14구에 설립하고, 그의 작품에
대한 소장 및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최근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에 의하면, 오는 9월8일에서 12월19일까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첫 전시였던 1932년 뉴욕의 줄리앙 레비 Julien Levy
갤러리 전시를 새로이 조명하는 추모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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