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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Steichen(에드워드 스타이켄)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 분리파 창설, 갤러리 291의 개관에 함께 함으로써 미국 근대 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리는데 있어서 지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사진 Director를 하면서 사진을 대중을 향한 드높은 영상매체로 끌어올린 혁명가이기도 하였다.

Edward Steichen은 1879년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1882년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어린 시절 석판 인쇄회사의 화공 견습생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과 사진을 공부했던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1899년 그의 사진이 'Second Philadelphia Photographic Salon(세컨드 필라델피아 살롱)’에 받아들여지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02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창립한 Photo Secession(사진 분리파) 의 창립 맴버이기도 한 그는 근대 사진의 선구자였던 스티글리츠와 함께 미국 예술 사진 운동을 이끈 사람이다. 'Camera Work'의 2호에 그의 열 한 장의 회화 주의적인 사진이 실렸고 스티글리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갤러리 291을 개설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특히 파리에 머무는 동안 세잔(Cezanne Paul), 피카소(Picasso, Pablo Ruizy), 마티스(Matisse, Henri), 로댕(Rodin, Francoiu August Rene)등의 작품을 갤러리 291로 보내 미국에 근대 미술을 소개하는데 노력했다.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1920-1930년대에 패션잡지인 'Vanity Fair(베니티 페어)' 와 'Vogue(보그)'에서 초상사진과 패션사진을 찍었으며 그 시기는 그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다. 그는 또한 세계 제 2차 대전에 참전, 전쟁사진을 찍으면서 대중들에게 깊이 있게 파고드는 르포르타주 사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후 그가 ‘Museum of Modern Art (MOMA, 뉴욕근대미술관)’의 사진부 Director 가 되면서 기획한 많은 전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Museum of Modern Art (MOMA , 뉴욕근대미술관) 은 1947년 68세였던 에드워드 스타이켄을 사진부 Director로 임명하였다. 그는 1951년 'Korea : Impact of War (한국, 전쟁의 상흔)' 展 , 1962년 'The Bitter Year (고통의 나날)'展 등의 많은 기획전시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진은 주체가 아닌 매체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며, 동시에 인간의 위대한 성취와 그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정서적 즉시성과 그래픽적인 창조성을 사진이 가지는 최고의 가치로 여겼으며, 절대로 난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특히, 1955년의 '인간가족 (The Family of Man)' 展은 세기적인 사진 전시로 평가 받고 있다. 이는 우주창조, 남녀간의 사랑, 결혼, 출산, 육아 의 테마로 전시돼 관람객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으며, 사진을 영상언어로서의 새로운 장르로 이끌었다. '인간가족' 展은 뉴욕과 유럽,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서 동시에 열렸으며 그 후 2년 동안 순회전시 되어 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시를 보았다. 한국에서도 1957년 4월 3일부터 28일까지 경복궁의 미술관에서 전시 되었으며, 그 당시 30만 명이 넘는 관중들을 끌어 모았다. 이것은 룩셈부르크의 Clevaux Castle에 영구적으로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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