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모도티는 1896년 이탈리아 우딘(Udine)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생계를
부양하기 위하여 1905년에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가난한 가정 형편 상 일찍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티나 모도티는 1909년 학교를 그만 두고 직물 공장에 취직했다. 1913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의류 공장에 다니며 모델 활동을 병행하면서 이탈리아 이민계들로 구성된 연극단에 입단하여 연기수업을
받았다. 1915년 로보(Robo)라 불리우던 캐나다 출신 화가이자 시인인 루베 드 라브리 리체이(Roubaix
de l’Abrie Richey)를 만나 2년 후에 결혼을 하였다.
1917년 결혼과 동시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티나는 예술가들과 각계 지성인들과의 다양한 교류를
갖게 되고 바로 이 시기에 티나는 에드워드 웨스턴을 만났다. 1921년 12월 티나 모도티의
남편 로보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 지 얼마 안돼 천연두로 사망하고 그의 장례식을 위하여 멕시코를
방문하였다. 1923년 웨스턴과 함께 멕시코로 떠난 그녀는 당시 전쟁과 혁명으로 인한 급속한
변화의 시대를 겪고 있던 멕시코에서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호세 클레멘떼 오로즈코(Jose
Clemente Orozco),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쟝 샤를로(Jean Charlot) 등과 어울리며 멕시칸
르네상스의 주도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회 정치 참여의식이 투철하였던 티나 모도티, 이에 반해
정치와 사회 운동에 거부감을 느꼈던 에드워드 웨스턴은 그녀와 결별하고, 1926년 홀로 미국으로
되 돌아갔다.
1928년 그녀는 적극적으로 혁명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하고 그 다음 해 멕시코 자유 대학에서
그녀의 마지막 대규모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 1930년 멕시코 대통령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으로 멕시코에서 추방당했다. 이탈리아 출신 혁명가인 비토리오 비달리(Vittorio Vidali)와
함께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 1936년 스페인 내전 동안 구호 활동을 펼쳤다. 모도티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갔지만 1920년대에 함께 활동 했었던 아방 가르드 예술가 집단과의 연락을 일체 두절하고
스스로 고립의 삶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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