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on Adolf De Meyer(바론 아돌프 드 메이어)는 1886년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자주 이사를 하였으며 어린 시절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다. 그는 항상
사진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며 그것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14살이 되었을 때 그동안
작업했던 그의 작품들이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1900년과 1910년 사이에는 미술관과 스튜디오에서
전시되었다.
27살이 되던 해, 드 메이어는 런던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부터 그는 Royal Photographic
Society(왕립 사진 협회) 와 The Linked Ring Brotherhood 그룹과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The Linked Ring Brotherhood는 The Photographic
Society (왕립 사진 협회)의 전 회원 이었던 15명의 사람들이 최초로 분리 되어 만든
그룹으로 유럽의 사진 분리파 그룹이었다. 이들은 협회가 지나치게 강조했던 기술적 또한 상업적인
것들에 실증을 느껴 그들 자신들의 모임을 갖고 또한 전시를 하기 시작하였다.
드 메이어 인생의 전환점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그의
작품들을 주목했고 또한 사진 분리파 회원이 되기를 요청했다. 그의 뛰어난 조명 기술과 함께 그의
작품들은 사진 분리파 회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큰 성과는 그가 1914년
Vogue(보그)와 Vanity Fair(베니티 페어)에서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잡지들이 새로운
경향으로 바뀔 때 그는 그곳을 떠나 파리에 있는 Harper(하퍼)의 Bazzar(바자)에서
일 하기 시작했다.
인생 전반에 걸쳐 바론 아돌프 드 메이어는 정물 사진 찍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과일이나 꽃,
유리병 등을 유리로 덮은 탁자 위에 배치시켜 놓고 촬영하곤 했다. 그래서 화병과 탁자 표면의
투명성, 그 반영들, 초점의 흩어짐이 공간감이나 깊이의 느낌을 사라지게 했다. 또한 독특한 조명
스타일을 개발해 로맨틱한 효과를 주었다. 그는 피사체의 다양한 각도에서 이러한 조명을 사용했다.
또한 드레이핑(drapping), 커튼 그리고 조명 등 등을 그의 피사체 뒤에 세움으로써 로맨틱한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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